내가 좋아하는 것들

칠월 백중--백석..

可耕 2004. 11. 20. 22:37

마을에서는 세불 김을 다 매고 들에서

개장취념을 서너번 하고 나면

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

백중날에는 새악씨들이

생모시 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

쇠주푀적삼 항나적삼의 자지로름이 기드렁한 적삼에

한끝나게 상나들이옷을 있는대로 다 내입고

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들어서

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두룩하니 해 곶고

네날백이 따백이신을 맨발에 바꿔신고

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

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길에는

건들건들 씨언한 바람이 불어오고

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랫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

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두에 바눌집에 원앙에 바둑에

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

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

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지일치듯 하였는데

붕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

깨죽이며 문주며 섶가락앞에 송구떡을 사서

 권하거니 먹거니하고

그러다가 백중 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

호주를 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

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에 가는 것이다

붕가집을 가면서도 칠월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

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

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씨원만 하다고 생각한다.

 

--칠월 백중은 내가 태어난 날..

 

우리 고향, 백석시인의 마을에서처럼

시끌벅적 동네 잔치를 하고

동네 제일 큰 어른이신 우리 외할아버지가

덥썩 내놓은 돼지와 닭을 잡아

온동네를 배불리 먹이던 날..

 

여름일 하기 바로 전..

하루종일 아무일도 안하고

먹고 놀기만 한다는 날..

 

그리고 나서 그 밤에 날 낳았다던 우리 엄마..

늘 말씀하시기를

너는 배는 안고플 것이다..

잘 먹는날 태어 났으니..

 

헐.. 엄마의 말이 틀린것도 있었네..

집을 떠나고는 늘 배고팠던 나..

이제는 마음이 고프고..

 

어느날 날 아끼는 스승이 해주신 또 한 말씀..

백중날은 떠돌아다니던 영혼들이

천도되는 날이라고..

네 삶도 누군가를 좋은길로 들게 만드는

삶이어야 한다고..

 

헐..

나는 여직 내 한몸 추스르지 못하고 있구만..

 

그래도 내가 태어난 날을 좋아하고

그날을 이리 흥겹게 묘사한

그의 시를 좋아함..^^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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