마을에서는 세불 김을 다 매고 들에서
개장취념을 서너번 하고 나면
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
백중날에는 새악씨들이
생모시 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
쇠주푀적삼 항나적삼의 자지로름이 기드렁한 적삼에
한끝나게 상나들이옷을 있는대로 다 내입고
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들어서
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두룩하니 해 곶고
네날백이 따백이신을 맨발에 바꿔신고
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
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길에는
건들건들 씨언한 바람이 불어오고
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랫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
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두에 바눌집에 원앙에 바둑에
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
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
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지일치듯 하였는데
붕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
깨죽이며 문주며 섶가락앞에 송구떡을 사서
권하거니 먹거니하고
그러다가 백중 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
호주를 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
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에 가는 것이다
붕가집을 가면서도 칠월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
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
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씨원만 하다고 생각한다.
--칠월 백중은 내가 태어난 날..
우리 고향, 백석시인의 마을에서처럼
시끌벅적 동네 잔치를 하고
동네 제일 큰 어른이신 우리 외할아버지가
덥썩 내놓은 돼지와 닭을 잡아
온동네를 배불리 먹이던 날..
여름일 하기 바로 전..
하루종일 아무일도 안하고
먹고 놀기만 한다는 날..
그리고 나서 그 밤에 날 낳았다던 우리 엄마..
늘 말씀하시기를
너는 배는 안고플 것이다..
잘 먹는날 태어 났으니..
헐.. 엄마의 말이 틀린것도 있었네..
집을 떠나고는 늘 배고팠던 나..
이제는 마음이 고프고..
어느날 날 아끼는 스승이 해주신 또 한 말씀..
백중날은 떠돌아다니던 영혼들이
천도되는 날이라고..
네 삶도 누군가를 좋은길로 들게 만드는
삶이어야 한다고..
헐..
나는 여직 내 한몸 추스르지 못하고 있구만..
그래도 내가 태어난 날을 좋아하고
그날을 이리 흥겹게 묘사한
그의 시를 좋아함..^^
'내가 좋아하는 것들' 카테고리의 다른 글
희망고문 (0) | 2004.12.20 |
---|---|
사랑에 대하여.. (0) | 2004.12.10 |
굴원의 어부사.. (0) | 2004.10.14 |
내가 좋아하는 시..3 (0) | 2004.10.02 |
내가 좋아하는 시..2 (0) | 2004.10.02 |